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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금형산업발전에 헌신해온 금형공학회 이하성 명예회장, ‘올해의 금형인’으로 선정
2018.01.03   |   조회 :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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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여년의 긴 세월을 금형과 함께 해온 금형업계의 ‘산증인’ 이하성 명예회장


‘(사)한국금형공학회는 2015년 12월 18일, 유한대학교에서 열린 ‘2015년도 정기총회’에서 공학회 회원 만장일치로 2, 3대 회장을 역임한 유한대 이하성 교수에 이어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허영무 박사를 제4대 (사)한국금형공학회 회장으로 선임하였다.’

‘지난 2016년 8월 12일, 라마다 서울호텔에서 금형산업 관련 산·학·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40여 년간 유한대학교에서 금형설계과 교수로 재직해 온 이하성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식이 열렸다.’

▲ 2017년 ‘제21회 금형의 날’에서 ‘올해의 금형인’으로 선정된 이하성 명예회장

현재 이하성 명예회장의 직함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뿌리산업기술연구소 금형기술그룹 연구위원’이다. 또 ‘한국금형공학회 명예회장’직도 겸하고 있다. 더불어 유한대학을 떠난 이후로 여러 제자들의 부탁으로 ‘기술고문’이라는 직함을 부여받고, 필요할 때마다 제자들의 회사로 달려간다. 이처럼 이제 정든 교정도 떠났고, 탄생부터 지켜 왔던 금형공학회 회장직도 물러났지만 이하성 명예회장의 전신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는 “금형”이라는 두 글자는 그에게서 떨어질 줄 모른다. 
지금부터 인간 ‘이하성’의 삶과 ‘금형’이라는 떨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되짚어 보자.


금형산업의 미래는 교육에 달렸다
1984년 경기공업개방대학(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 세계 최초로 4년제 정규 금형학과를 신설하는 데 크게 기여한 류제구 박사. 이에 뒤질세라 한 해 뒤인 1985년 유한전문대학교(현 유한대학교)에 금형설계학과를 신설한 이하성 명예회장. 이 두 사람은 우리나라의 금형교육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마련된 정부의 ‘금형공업 육성시책’에 힘입어 국내 금형산업은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전환기를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80년대까지 우리 금형업계가 풀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전문 인력의 절대 부족’ 문제였다. 당시 류제구, 이하성 교수 등 학계와 금형조합에서는 금형업계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관계당국에 전문 인력의 양성을 위한 진정과 건의를 수차례 전개하고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마침내 1985년 들어 정부의 ‘금형공업 육성시책’이 확정되면서 비로소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문교부에서 대학 및 전문대학에 무조건 금형과를 개설해주기로 방침을 정하자 부산공업대학(현 부경대학교), 천안공업전문대학(현 공주대학교 천안캠퍼스), 유한공업전문대학(현 유한대학), 대유공업전문대학(현 동서울대학) 등에 금형관련 학과가 생겨났다. 또한 노동부는 금형기술사 및 금형설계기사(1, 2급) 자격제도를 신설하였으며, 기능공 재훈련 강화를 위해 창원직업훈련원 등 4개 훈련원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재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공고생 금형 실기지도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정부의 ‘금형공업 육성시책’ 마련에는 지금은 시간이 지나 웃을 수 있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 1983년 12월 12일(일), 전두환 대통령은 KBS의 기획기사 프로그램인 ‘뉴스파노라마’에서 방영한 ‘틀(形)이 있어야 찍어내지요-금형산업의 현주소’라는 프로를 시청하고 있었다. 원래 특집 프로그램은 12월 3일 방송을 내보내기로 했었는데, 하필 다대포 무장간첩사건으로 이 방송은 전파를 타지 못했고, 방송 일정이 늦춰진 바람에 우연히도 12월 12일 방송된 이 방송을 전두환 대통령이 직접 보게 됐고, 방송을 본 전 대통령이 ‘금형산업 육성방안’을 수립하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대포 무장간첩사건은 한국금형산업의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대통령이 관계부처에 금형산업 육성방안 수립을 지시함으로써 1984년 2월에 1차(안)이 준비되었으나 내용이 미흡하다 하여 보완지시를 받고 반려되었고, 이에 따라 청와대 비서실에서 1984년 2월 14일 조합을 직접 방문하여 업계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는 등 당시 상공부, 과학기술처, 공업진흥청 관계부처들이 일시에 금형산업에 대한 현황 파악에 들어갔다.
이후 정부에서는 공업진흥청과 조합이 공동으로 ‘전국금형업체 실태조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이를 토대로 당시 공업진흥청 주관 하에 금형산업 육성방안을 다시 마련하였고, 이 방안은 1985년 11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4회 기술진흥심의회에서 대통령에게 보고된 후 확정, 시행하게 된 것이다.
“금형교육을 시작하는데 교재가 있어야죠. 교재가 없으니 교육자료를 편집해 교안을 만들어 가며 수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2년간 교육을 시킨 다음 교안을 정리해서 책을 만들었습니다. 성안당이란 출판사에서 출간을 했는데… 이게 전 대학에서 쓰는 교재가 됐어요. 그 덕에 제가 유명해졌었죠.”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당시에 이하성 명예회장 등이 우리 금형교육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노력한 수고는 후학들은 물론 업계에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80년대 중반 4년제 및 2년제 대학에서 금형학과 설립이 이어졌지만 당시의 열악한 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교재조차 없었다. 이하성 교수는 수업을 통해 모아진 교안을 가지고 교재를 만들어가며 수업을 해야 했다. 사진은 당시 이하성 교수가 집필한 《금형설계》 표지이다.


한국금형공학회 설립 
한국금형공학회 탄생의 실질적인 산파역을 맡았던 이하성 명예회장은 류제구 박사의 뒤를 이어 2, 3대 회장을 맡으며, 금형학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1985~86년 무렵인가 친목단체 형식으로 금형학회가 결성되었다가 유명무실해 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금형학회를 만들자’는 금형과 교수들의 염원이 있었어요. 그런데 전문대학이나 학부대학이 많지 않을 때니까 학회를 만들기 힘들었죠. 학회를 만들면 국제대회도 유치할 수 있고, 논문도 푸짐하게 나와야 금형산업도 발전하는데….”
그러던 중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2005년 11월 18일, 제9회 금형의 날 행사에서 ‘올해의 금형인 상’을 수상한 재영솔루텍(주) 김학권 회장이 수상소감 발표에서 놀라운 폭탄선언을 했다. 금형학회 설립에 2억 원의 기탁금을 약속한 것이다. 이후 업계의 지원이 이어지면서 본격적으로 학회설립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이하성 교수를 창립준비 위원장으로 하여 조합 회의실에서 수차례 회의가 이어졌다. 명칭을 ‘한국금형공학회(KSDME)’로 정하고, 2006년 4월 5일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금형분야의 학계, 연구계, 업계 대표 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발기인대회를 열었고, 이날 발기인들은 한국금형공학회 초대회장에 당시 서울산업대학교 류제구 교수를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이어 2006년 4월 28일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1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정식으로 태동하였고, 2006년 11월 13일 산업자원부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이어서 2009년 12월 18일 한국금형공학회 정기총회에서는 유한대학 이하성 교수가 제2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 한국금형공학회 창립총회에서 경과발표를 하고 있는 이하성 명예회장


‘전국 대학생 금형 3차원 CAD 기술경진대회’ 개최
금형조합은 2004년부터 3차원 금형설계 능력이 곧 우리나라 금형산업의 품질경쟁력을 좌우한다는 판단아래, 우리나라의 중추 산업을 이끌어 갈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금형 3차원 CAD기술경진대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2001년도 인가 중국에 갔을 때 보니까 그때 벌써 3D로 금형을 하는 거예요. 당시 우리 교육기관에서는 2D 뿐일 땐데 깜짝 놀랐어요. 이리저리 방법을 생각하다 김학권 당시 이사장님을 만나서 논의를 하게 되었고, 결국 해를 두 번 넘겨 2004년도에야 예산이 마련돼 대학생 금형 3차원 CAD 경진대회를 열게 된 겁니다. ‘당신이 하자고 한 거니 당신이 끝까지 책임지라’해서 유한대에서 첫 대회를 열었고, 그 다음 4회까지 대회를 열게 됐습니다.”
이후 2008년 5회, 2009년 6회 대회는 한국폴리텍2대학 인천캠퍼스에서, 2007년 7회 대회는 처음으로 수도권을 벗어나 공주대학교 천안공과대학에서 개최되다가 한국금형기술교육원이 설립되면서 올해 처음으로 금형교육기술원에서 개최된 것이다.
이 대회는 회를 거듭할수록 참가학생이 증가하는 등 대회열기가 고조되고 있으며, 2007년부터 산업자원부에서 주최하는 생산기반기술경기대회(현 뿌리기술경기대회)의 금형분야 공식대회로 인정받았으며, 이 대회 입상자들에게는 장관상 등 정부포상이 추가로 지급되어 대회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특히 전국의 금형교육기관과 학생들의 설계 및 CAD 활용능력 향상은 물론 핵심인재 채용을 희망하는 금형업계에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우리나라의 금형산업이 국제경쟁력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 전국 대학생 금형 3차원 CAD 기술경진대회


지난 40여 년간 이하성 명예회장은 금형교육 환경조성, 금형 인력의 재교육, 국제금형 산업 협력네트워킹 사업, 금형 관련 산업표준 정리, 정책제안, 금형 집적화 산업단지조성, 한국금형공학회 설립, 산업단지 금형 관련 산학연협의체 활동 등의 일을 꾸준히 해왔다.  
이하성 명예회장의 금형전문 인력양성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여전하다.
“우수 인재가 꾸준히 금형을 접할 수 있도록 4년제 대학, 전문대학, 폴리텍대학, 인력개발원, 특성화고등학교 등이 기술 인력을 분담하여 양성할 수 있는 협의체를 만들어 조정기능도 갖고 체계적인 지원활동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한국금형기술교육원’이 구심점이 되어 기업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교육을 맞추어갈 수 있도록 각종 교육기관과 함께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금형교육위원회 등을 만들어 토의를 통해 금형업계의 발전적 미래를 위한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결과를 도출해내야 합니다. 
조합에서 한국금형기술교육원을 탄생 시킨 것도 크게 칭찬받을 일이지만 이제는 이의 활용도를 높이고, 또 자생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고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금형기술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확연하게 나도록 신입사원, 재직자 심화교육, 초보자, 경력자 교육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나가야 하며, 규모도 지금보다 몇 배 더 성장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금형공학회도 조합과 합심해서 2018년도부터는 세미나, 교육 등을 더욱 강력하게 실시해나갈 계획입니다.” 
1950년생. 고희를 코앞에 두고 있는 이하성 명예회장은 지금도 금형업계의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을 위해 남은 인생을 바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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